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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잎 ..02 화

 

 

 

다음날은 토요일이며 휴일이었다. 승민은 재수중이었기 때문에 거의 10시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눈을 뜬 승민은 대강 옷을 걸치고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는....


부엌에는 왠 남자가 식탁에 않자 있었다. 
"엇...죄송합니다...엄마친구분이 와계신줄 몰랐어요." 승민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남자는
대단히 잘생긴 얼굴에 한 40대쯤 되어 보였고, 말끔하게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승민은 엄마가 남자친구를 집까지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마 은행에서 온 사람일 꺼야...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승민이 안녕" 그남자가 인사했다. "여기와서 좀 않을래?"


승민은 팔짱을 끼며 의자에 앉았다. 그 남자는 승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승민아...나야...엄마야."


뭐라고? 이 남자는 누구야? 도대체 이 자가 뭐라 하는 거야?


"그 나뭇잎 기억나니? 승민아....그리구 내가 어제밤에 빈 소원이 뭐였지? 그게 진짜로 먹혔어.
 내가 지금 우리 은행 사장이야. 그리구 남자구...."


승민은 놀라서 말이 안나왔다. 웃기지두 않아...  "우리 엄마 어디있어요?"


"지금 말하잖니...나야 나!! 그 나뭇잎이 조화를 부려서 내 소원이 이루어진거야. 물론 내가
 원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그걸 어떻게 믿어요? 지금 농담하는 거죠?"


그 남자는 의자에 깊숙히 앉았다. "그럼 내게 물어봐. 니네 엄마만 알 수 있는 걸 물어봐."


"내 어릴 때 이름이 뭐죠?"


"고구마"


"제 생일은요?"


"구월 십오일"


"방학동 살 때 아파트 앞 집엔 누가 살았죠?"


"거긴 이년동안 비어있었어"


승민은 수십개의 질문을 했고, 그 남자는 모두 정확하게 답변을 했다. 우리 엄마가 아니라면
그렇게 까지 다 알 수는 없는데.... 왜냐면 엄마는 수다를 떠는 타잎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리 따라 와봐" 그 남자는 손가락으로 지시했다. "네게 보여 줄 게 있어"


이 쯤 되서 승민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 자가 엄마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거면 어쩌지?
 

그는 그 남자를 따라 안방으로 갔다. 뭔가 어제밤과는 달리 방안이 변해 있었다. 엄마 혼자
십수년을 쓰던 그 방에는 여자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전부 남자의 것이었다. 남자 옷,
남자 화장품. 승민은 반쯤 열린 장농을 보았다. 거기엔 치마도, 블라우스도, 핸드백도 없었다.
남자 양복, 남자 바지, 넥타이가 대신 있었다.


승민은 침대에 걸터 앉았다. 무릎부터 떨려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말했잖아."


그 후 몇 시간 동안 승민은 밤새 일어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일찍 일어났는데, 뭔가
잘못된 걸 알았다고 했다. 엄마도 이해하기까지 한시간이나 걸렸다. 엄마의 주민등록증에는 이제
엄마는 "이희주"가 아니라 "이희준"이라고 써 있었다. 엄마의 주민등록번호도 "2"가 아닌 "1"로
시작하고 있었다. 희준(엄마)은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은행사장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은행의 그 누구도 "이희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사장인 "이희준"은 알고 있었다.


희주의 물건도 모두 변했다. 옷, 영수증, 운전면허증, 각종 서류...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희주와
승민의 사진도 없어 졌다. 현재의 희준이 갖고 있는 승민이와의 이전 기억들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희준이 말을 끝내자, 승민은 한참동안 말이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럼 엄마도 아닌데, 이제 뭐라 부르죠?" 상당히 현실적인 우리의 승민...


"맞아..엄마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고... 아빠도 아니고...그냥 "희준아저씨"라고 하면 어떨까?"


"이상한데..."


"그것 밖에는 없지 않니?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그렇고.."


"알았어요, 아저씨.." 한참후에 승민은 겨우 인정했다. "근데 말이죠...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거죠?
나뭇잎에 소원을 또 빌면 되잖아요?"


희준은 벽을 바라 보았다. "그럼 그럼...하지만 좀 있다가...재밌잖니...사장도 해보고...우리은
행이 얼마나 큰 회사인데...평생 사장 한 번 못해보고 퇴직하는 거 보다 좋잖아..게다가...나뭇잎이
다시 먹힐 지 모르겠고....."


승민은 이 소리에 조금 불안해졌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단 하나의 사람이었는데.
단지 잠시만이라도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좋았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나?


"근데..왜 남자가 된 거죠? 여자사장도 있는데..."


"글쎄...내 생각엔 요즘 세상에 여자사장이 은행에 있는 건 좀 받아 들이기가 힘든가봐.
 나뭇잎은 사장이 될 수 있게 해준 거 뿐이지. 그러니까...사장이 되야 한다면..또한 남자가 되야
 되는 모양이야."


"진짜 남자에요? 제말은....생물학적으로 말이에요."
"달릴 거 다 달렸어...." 희준은 조금도 부끄럼없이 대답했다.


승민은 주말동안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느라 꽤 애썼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희준은 잘 보이지
않았다. 희준은 하루종일 서재에 박혀 컴퓨터에 빠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승민이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자 희준이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아가야...회사간다."  "행운을 빌어줘"


"잘 하세요"


"그리구..승민아..오늘 집안 일 좀 해줄래? 빨래도 쌓여 있고, 부엌도 좀 청소 해야되겠던데.."


"알았어요...다녀오세요"


"고마워..내가 좀 바쁘구나...부탁한다.. 일찍 올께"


승민은 아침을 먹고 샤워를 했다. 정말 빨래가 많긴 많았다. 그 많은 빨래를 하느라고 오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오후에는 세제를 꺼내어 부엌을 바닥부터 찬장까지 박박 닦았다. 


승민이 청소를 시작해서 바닥에서 기어다닌지 한시간이나 되었다. 그는 엄마의 존재가 그리워졌다.
아니면, 희준의 존재가 껄끄러웠다. 왜 희준은 밖에 나가서 멋진 사장이라는 직함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나는 이렇게 부엌바닥에서 기고 있어야 하지? 희준에겐 식모나 가정부를 둘 수도 있을텐데...
승민은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제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다섯시 반이 되자 승민은 저녁준비를 했다. 그러나 희준은 여덟시가 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왔다.


"어...미안해..너무 늦었지?" "오늘 첫날이라 할 일이 얼마나 많던지 말야. 내일은 언제 들어올 지
 전화해 줄께. 저녁밥은 그냥 간단하게 뭐 좀 줄래?"


승민은 라면을 끓여서 서재로 가져 갔다. 희준은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마워" 희준은 승민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승민은 잠시 거기 서 있었다.


"오늘 첫날인데 어땠어요?"


"괜찮았어..."희준은 간단히 말을 끊어 버렸다. 승민은 부엌으로 돌아와서 잡지를 뒤적였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희준은 서재에서 나왔다. 그는 승민의 맞은 편 식탁의자에 앉아서 그날
있었던 일을 풀어 놓았다.


"굉장해..." "내가 알았어야 되는 회사 일들은 그냥 머리 속에 떠올라. 뭐든지 말야. 마치
 내가 지금까지 희준으로 평생 살았던 것 처럼 말야"


"그럼.....살아왔던 기억들도 말이에요?"

 

"맞아...니 엄마인 희주였던 기억들도 있는데...희준이라는 사람의 기억도 함께 존재해"

승민은 희준이 은행에서 사장으로서 하는 일들을 들었다. 희주는 은행에서 여자와 남자가
얼마만큼 다른 대우를 받는지 놀랍다고 했다. 그 세계에서는 남자는 여전히 실제로 상류사
회였던 것이다. "내가 희주일 때는 그다지 좋은 대우를 못 받았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


희준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뭇잎에 관한 이야
기도. 승민이 하루종일 그 나뭇잎을 찾아 보려고 여기저기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희준이 숨겨 놓은 게 틀림없었다.


다음날, 화요일은 전날과 비슷하게 지나갔다. 희준은 새벽같이 출근했고, 승민은 요리며 청
소며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서 했다. 그날 밤, 승민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승민은 가정부
를 들이자고 희준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희준은 현재상황에 비추어 볼 때 외부사람을 집안
에 들여놓는 것은 좀 위험하다고 변명했다. 말은 맞는데......


은행에서는 승민이 희준의 조카로 되어 있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먼 친척 조카...젠장. 승
민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요일은 화요일마냥 지루했다. 그날밤 승민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나도 집밖에서의 생활이 있어요. 매일 집에만 틀어 박혀서 식모처럼 일하고만 있고
 싶진 않다구요..."


"뭐가 문제야? 오히려 편하게 생각해봐.. 사람들 만나서 짤릴 거 걱정 안해도 되지. 집안일
생각만 하면 되잖아? 공부할 시간도 많고....대학에 합격해서 내년부턴 대학 다녀야지..."


"있잖아요...지금하는 건 식모일이잖아요....가정부라도 들여놔요..저도 좀 살아야 되잖아요!!!!"


"집안일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이건 여자가 할 일이잖아요..."


희준은 오랜 생각 끝에 말했다. "좋아..어떻게든 해결해 줄께...됐지?"


승민은 방으로 들어갔고, 그날 저녁 희준을 볼 수 없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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