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1』 제12부 이방인의 섹스
선미는 창 밑에 앉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창유리를 파고드는
햇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방안에 마름모꼴로 펼쳐지는
햇볕 기둥 한 가운데 지혜가 앉아 있었다.
지혜는 무릎을 세우고, 그 세운 무릎에 턱을 괸 체 담배를 피우며
선미의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가끔 나를쳐다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없이 투명해 보이는 입술 사이로, 오늘 아침부터
피우기 시작하는 하얀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는 선미, 그녀에게 그런 기억이
숨어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난 그때 사랑이 뭔지 몰랐어. 그렇다고 남자 친구가 있었던 게 아냐.
만약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 아니 남자 친구는 고사하고 남동생이나,
아빠만 있었어도 그처럼 철부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꺼야."
나는 조금씩 선미의 말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어떠한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중학교의 국어 선생이란 직업이 두 모녀가 살기에는
넉넉했던지 지금까지 재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든 선미가 남자의 성(性) 에 대한 끝없는
동경내지, 호기심을 가졌을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미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고 표정도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햇볕
기둥 밑에 숨어 있는 집을 잃은 영혼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녀는
자신의 체험에 토해 내면서, 이방인처럼 앉아 있었다.
"여름이었어, 무진장 더운 날이었지. 그 날 나는 오전 수업만 하고 집으로 갔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도 생리가 끝난 후에는 두통에 시달리곤 했지,
그 날도 생리가 끝난 다음 날 이었을 꺼야. 날씨만 덥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는데 그날 따라 날씨 탓인지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었어......."
선미는 잠시 말을 끊고 빈 캔 맥주 통에 담뱃재를 털었다.
담뱃재를 터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아름다워 보였다. 메니큐어를 칠하지 않는
손톱도 무척 정갈해 보였다. 지금도 손이 그처럼 아름다운데 중학교 이 학년 때는
더 예뻣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녀는 햇볕 안에
숨어 있는 요정 처럼 쪼그려 앉아 있는 지혜를 쳐다 보지 않고 줄곧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게 나를 부담 스럽게 만들었다. 굳이 내가 그녀의 첫 경험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첫경험에 대한 카운셀러가 될 수도 없었다.
"그래........"
선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일단 서두를 꺼냈다가 입을 다물었다.
한참만에 지혜를 쳐다보고 나서 싱겁게 웃었다. 지혜가 이해 할 수 있다는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간지에 흔히 나오는 정사 있지, 사촌 누나하고 섹스를 했다.
어떻하면 좋으냐, 형부와 섹스를 했는데 괴로워 죽겠다. 영어 선생님 하숙집에서
잠을 잤다. 난 선생님을 사랑하는데 선생님은 내가 싫은 것 같다. 정말로 죽고 싶다.
는 따위의 약간은 저속하고 때 에 따라서는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가십 기사 말야.
그 시기에 나는 몰래몰래 그런 기사에 탐독하곤 했었어. 그러나 그때마다 흥미
이상의 관심을 가지진 않았어. 왠 줄 알어, 모두 꾸며댄 이야기란 생각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그 주간지의 주인공이 될 줄 꿈이나 꾸었겠니."
선미는 말을 끊고 지혜에게 '약간 춥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보일러의 온도를 난방으로 높였다.
"술은 없겠지?"
선미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지혜에게 물었다.
"아냐, 냉장고에 캔 맥주 몇 개 가 있을 꺼야. 저번에 진우 네가 사 온 맥주야.
그러고 보니 넌 이 방에 올 때마다 항상 캔맥주만 사 오는 구나, 썸싱 스페셜이라든지,
베리나인, 임페리얼 같은 국산 양주도 사 온 적은 없었어."
지혜는 마른 웃음을 지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랑 불빛에 야채나, 과일 따위가 어 추워! 하며 누워 있는 게 보였다.
"백수 처지에 캔 맥주도 과분해, 그 맥주를 사 올 때 마다,
이삼일 동안은 깡통차고 있는거 너도 잘 알고 있잖어."
나는 지혜가 건네주는 캔 맥주를 받았다.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찬 냉기를
느끼는 순간, 엊저녁에 소주와 짬봉해서 먹었던 맥주가 생각나며 건 구역질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한 모금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결근까지 하고,
중학교 이 학년의 첫 경험을 들려 주고 있는 선미를 배려하기 위해서 였다.
"미안하다, 계속해 봐."
지혜가 선미에게 언어의 배턴을 넘기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집에 오는 길에 같은 동네에 사는 사촌 오빠를 만났어. 중학교 삼 학년이었는데
개교 기념일 이라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거야.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까 친구 만나러
간다는 거 였어. 그리고 오빠와 헤어 졌지.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내 방에 가서 누웠어.
두통이 심해서 브레지어를 벗어버리고, 헐렁한 티셔츠에 핫팬티 만 입었더니 한 결
두통이 덜 한 것 같은 기분 속에 잠이 들었어......."
선미는 캔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담배꽁초를 껐다. 입이 쓴지 혀로
아래 윗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섹시하게 보였으나 그녀의 다음 말이
궁굼해서 섹시한 것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